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라 뱅크스 (문단 편집) === 모델 생활 === [youtube(JMLKOAXHWAY)] || [[파일:tyra1.jpg|width=600]] || || 1991년 이브생로랑, 활동초 하이패션 활동 시기 || 모델계 데뷔 자체는 15세에 했으며 현재의 커머셜한 이미지와 달리 초창기에는 하이패션 위주로 활동을 하였다. 본격적인 데뷔는 1991년 18세 때로 이 때 파리 패션위크에 데뷔하자마자 이브 생 로랑등 25개의 쇼에 부킹되고 스페인 보그 커버를 따오는 등 '차세대 [[나오미 캠벨]] 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어쨋든 이 데뷔로 그녀의 하이패션 커리어하이를 찍었지만 이후에도 나름대로 디올이나 입생로랑등 하이패션쇼에 충분히 서고 있었고, 이 시기부터 신디 크로포드를 본따 다양한 활동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이패션 활동이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녀지만 사실 어디까지나 비교대상이 [[나오미 캠벨]]이기 때문이고 나름대로 수퍼모델소리는 들을 정도까지는 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xwv46yU08|데뷔 직후 CNN Style에서 그녀만을 주제로한 꼭지를 만들어 주는 정도는 됐고]] [[https://www.youtube.com/watch?v=68pzJx1U6ME| 아세니오 홀 쇼에서 그녀를 수퍼모델로 지칭하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 ||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5px; margin-bottom:-5px"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9693d8fde6e4eed54dee220dff917d56.jpg|width=100%]]}}} ||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5px; margin-bottom:-5px" [[파일:external/img.hurhaber.com/58851.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5px; margin-bottom:-5px" [[파일:external/1.bp.blogspot.com/Picture%2B-%2B8-701489.jpg|width=100%]]}}} || ||<-2> '''타이라 뱅크스를 대표하는 핀업 이미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지의 표지''' || 문제는 그녀가 90년대 중반부터 가슴과 엉덩이가 커지며 몸의 굴곡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 당시는 글래머 슈퍼모델들의 전성기이던 80년대의 영향이 남아있어 현재보다 비교적 풍만한 모델들을 선호하긴 했지만 어쨋든 [[케이트 모스]]의 영향으로 모델들이 다시 깡말라지고 있는 추세였으며, 자란 몸의 기준으로는 그 당시에도 하이패션 모델의 기준으로도 컷다. 이에따라 에이전시에서는 타이라 뱅크스에게 몸매 변화로 인해 취소된 디자이너 콜을 보여 주며 체중을 줄이라고 요구했으나, 매니저를 겸하던 어머니 캐롤린은 타이라에게 "모델 일이고 뭐고 피자나 먹으러 가자"고 답했다고. 이때부터 타이라는 아예 유럽 활동을 접고 미국에서 커머셜 모델로 완전히 자리잡는다. [* [[https://www.youtube.com/watch?v=zELpQ3o8UVE]] 아직 하이패션 모델 활동을 하던 94년의 영상에서 소비자들이 자신들과 같은 몸매를 가지는게 너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미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고 그런것보다는 너 자신이 중요하다는 답변을 하는것을 보면 애초에 타이라 본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 흔히 90년대 [[나오미 캠벨]]의 라이벌이자 캠벨의 [[보이콧]]으로 인해 하이패션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캠벨이 하이패션과 커머셜 양쪽 모두에서 탑이었단 걸 감안하면 뱅크스의 (커머셜에 비해) 부실한 하이패션 커리어가 과연 캠벨의 보이콧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 의문. 2~30년이 지난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흑인 모델 TO설'이다. 당시 패션계는 백인들이 주도하는 백인 천국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흑인 모델은 패션지 표지는 커녕 지면 한 페이지 구석에도 싣지 않던 시기였다. 흑인들 같은 가난한 것들이 럭셔리 패션의 세계에 어딜 감히 접근하냐는 수준의 [[인종차별]]이 암암리에 있었던 시기고, 실제로 흑인들의 패션계 구매력도 그 시절엔 없다시피 했다. [[디자이너]]들도 흑인 모델은 런웨이에 그냥 없으면 왠지 인종차별주의자 소리 들을까봐 한 명 정도 세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점에서 이미 탑클래스 흑인 모델인 캠벨을 캐스팅했으니 굳이 미국에 있는 뱅크스까지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 즉 '''디자이너들이 흑인 모델을 2명이나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해''' 캠벨은 나오는데 뱅크스는 못 나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실제로 타이라뱅크스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데뷔 직후 에이전시를 찾아가면 "우리는 이미 흑인 모델하나 데리고 있어요" 라는 말을 부지기수로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에이전시에서는 "니가 지금은 세븐틴 커버도 찍고 잘 나가는것 같지만 어쨋든 너는 흑인이라 잘 되기 어려울거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타이핑이나 배워서 나중에 나처럼 에이전시 수석 사무원이라도 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 이 TO문제는 흑인 뿐 아니라 동양인 관련해서도 최근까지 존재한 문제기는 하다. 한혜진이 백인들 자리는 정해져 있고 얼마없는 동양인 자리가지고 한중일 모델들끼리 경쟁해야 했다고 한탄하던걸 생각해보자] 사실 그녀의 부실한 하이패션 커리어는 나오미 캠벨의 보이콧까지 갈 것 없이 그녀 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타이라 뱅크스 본인의 체형변화로 인한것으로 보는게 자연스럽다. 애초에 타이라가 미국에 있었던 시기는 그녀가 하이패션 활동을 포기한 시점이었고, 실제로 실제로 하이패션 활동을 하던 시기의 그녀의 사진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지, 빅토리아 시크릿등 90년대 중반이후 그녀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볼륨에 엄청나게 차이가 있는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그녀가 하이패션 활동을 하던 시기 저 흑인 TO 문제로 신예 흑인모델의 등장에 예민해진 나오미캠벨의 견제를 받은것 자체는 맞고 그 여파로 일을 잃어버린 경험 자체도 있기는 하나 [* 이것때문에 그녀가 나오미캠벨을 싫어하는건 공공연한 비밀이고, 타이라쇼를 진행하던 시기에는 나오미 캠벨을 불러서 대놓고 사과를 종용한 적도 있다.] 어쨋든 그 시기 그녀와 나오미 캠벨 사이에는 '이미 잘 나가는 슈퍼모델'과 '이제 막 두각을 보이는 신예모델' 라는 엄청난 갭이 있었고, 캠벨의 보이콧의 영향을 받은것 치고는 입생로랑, 디올, 안나수이등 데뷔 때에 비해 쇼가 떨어졌을 뿐 나름대로 굵직한 빅쇼들과 캠페인들을 잘만 따내기도 했고... 그녀가 뉴커머 딱지를 때고 본격적으로 슈퍼모델로 불리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아예 커머셜로 전향해버린 바람에 커머셜, 하이패션활동을 균형있게 진행한 나오미 캠벨에 비해서 커머셜 커리어에 비해 하이패션 커리어가 딸리는 것으로 보는게 자연스럽다. [youtube(tfBheagbYsM)] || {{{#!wiki style="margin:-10px; margin-top:-4.8px; margin-bottom:-5.2px" [[파일:external/rollingout.com/Tyra-tyra-banks-420482_727_1024.jpg13.jpg|width=100%]]}}} ||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로 활동할 당시 모습. 빅시 모델 계의 손꼽히는 레전드로, 유명 탑 모델들의 전유물이었던 날개 장식도 큰 것으로 여러번 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